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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책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by 공기팩토리 2018.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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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는 동생이 큰소리로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폐미 데려오라 그래, 난 폐미도 이길 수 있어. 

(자기들끼리 하는 장난의 말이었다)



맥락상 자신의 말빨이 세기에 무논리 폐미 상대하는 것도 자신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평소 인권이니 기본권이니 하는 가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친구였다. 그냥 여친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게임 방송을 보며, 친구들과 술 한잔하며 여자 얘기 하는, 말 그대로 평범한 남자다. 그의 입에서 폐미 소리가 나왔으니 귀가 번쩍 뜨이긴 했지만, 전후 내용을 듣고는 마음만 심란해졌다. 폐미가 이슈이긴 이슈인가 보다. 


내가 알고 있는 폐미니즘은 성별을 떠나 이 세계에서 존중받아야 할 가치다. 생물학적으로 나뉘어진 성은 사실 특별히 차별이 발생할 건덕지가 없다. 그냥 남성/여성으로서 태어났을 뿐이고 그에 맞게 살아갈 뿐이다. 다만, 사회학적으로 봤을 때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남녀차별에 대한 역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차별에 대해 남성과, 같은 의무를 통해 같은 권리를 부여받기 위한 여성의 처절한 사투였고 이는 여성의 인권 향상을 가져왔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이고 세계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상대적으로 낮은 집단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 치고 있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을 접했을 때, 감동을 받았었다. 여성 인권에 대한 인지 없이 살아왔던 내 과거를 돌아봤을 때 무심코 행한 나의 행동들이 여성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를 생각하면 무척 미안했고 가슴이 아팠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는, 그런 말이 이해가 갔다. 확실히 나는 여성의 삶과 인권에 대해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평범하게 지내왔던 생활과 대화, 농담거리, 생각들이 꽤나 마초이즘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는 여성들도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저 그렇게 서로 살아오던 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나름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며 그동안의 무지에 대해 나름 반성하고 살았다. 그리고 노량진 횟집에서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도 꽤 오래전이다. 즐거운 회식자리였고 화기애애했다. 그러던 중 한 남성이 말 실수를 했다. 한 여성에게 싸보인다라는 말 실수를 했던 것이다. 그 친구는 실제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재밌게 얘기를 하려다가 단어 선택을 잘못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해당 여성에게 수차례 사과를 했다. 동료들도 성희롱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일단락 되는 듯 했다.(당시는 페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거의 없었다. 직장내 성희롱이 이슈가 되던 시기였다) 나는 위로한답시고, '괜찮냐, 기분 많이 나뻤지, 나쁘게 얘기하려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신경쓰지 마라, 그냥 잊어버려라' 같은 말을 했는데, 오히려 그녀는 나에게 더 서운해했다. 잊으라는 말이, 신경쓰지 말라는 말이 더 상처고 자기를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나는 결국 남성으로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누렸던, 있다고 생각도 인지도 하지 못했던 지위가 있었고 여성들은 그것들을 느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스스로도 인지를 못했겠지만 페미니스트였던 것이다. 


사실, 사회학적으로 조금만 찾아보면 여성들이 받아왔던 불합리한 차별은 무수히 많다. 아직 여성 인권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심할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들이 여러 잡음과 파시즘이 결합해서 터져나오고 있고 거대한 전쟁터가 되었다. 지금은 페미라는 단어만 언급하는 걸로 낙인이 찍혀서 조리돌림을 받는다. 무척 가슴 아픈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바로 자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통계는 정 반대를 말한다. 아빠가 키우는 아이가 통계적으로 바로 자란다고 한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무척 의문이 들었다.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 있어야지 아이가 올바르게 자랄 터인데, 그리고 그렇게 알고 살았는데 이 무슨 뜬금없는 얘기인가... 


결론은 우리나라의 여성 차별에 대한 얘기일 수 있다. 아빠가 키운 아이는 상대적으로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적다. 이는 이 사회에서 엄마가 키운 아이보다 조금이나마 높은 교육 시스템을 통해 자라난다는 말이다. 반대로 엄마가 키운 아이는? 여성은 재취업이 쉽지 않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급여가 낮은 직종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남성에 비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다. 남성에 비해 생활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고, 그 자녀들은 아빠가 키운 자녀보다 상대적으로 교육적 환경이 나쁠 수 밖에 없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인간사의 얘기는 빼고 통계만의 얘기다. 그런데,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결과였고, 내가 갖고 있던 전통적 사고방식과는 괴리가 있기에 무척 인상깊었다. 


82년생 김지영


남자 입장에서 이해가 안 가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아마 많은 남성들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본다면 이해 못할 이야기도 아니다. 가슴아픈 이야기다. 우리 엄마의 이야기고, 내 와이프의 이야기고 내 딸의 이야기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같은 인간에 대한 얘기다. 







-책소개(교보문고)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한국 여자의 인생 현장 보고서!

문학성과 다양성, 참신성을 기치로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예들의 작품을 엄선한 「오늘의 젊은 작가」의 열세 번째 작품 『82년생 김지영』. 서민들의 일상 속 비극을 사실적이면서 공감대 높은 스토리로 표현하는 데 재능을 보이는 작가 조남주는 이번 작품에서 1982년생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한 축으로,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또 다른 축으로 삼아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 김지영 씨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 내고,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 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 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 씨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이후 여성부가 출범함으로써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 즉 제도적 차별이 사라진 시대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내면화된 성차별적 요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지나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며 미처 못다 한 말을 찾는 이 과정은 지영 씨를 알 수 없는 증상으로부터 회복시켜 줄 수 있을까?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그녀’들의 인생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책갈피 증정) 82...